phone call
12시가 겨우 넘어가는 시간, 추위에 지친 몸은 쉽게 잠드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난방을 최대로 틀어도 쉽게 추위는 가시지 않고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 소리는 되려 잠을 깨울 뿐이었다.
-추워?
-응
-손잡아 줄까?
-됐어 너 춥잖아.
이불속을 더듬어 보아도 늘 잡았던 따스한 손은 잡히지 않는다. 싫다고 억지를 부려도 다가와 손을 잡고 추위를 잘 타는 몸을 안아주던 따듯하다 못해 뜨거운 사람, 너는 너무 따듯해서 내게서 증발해 버린 걸까. 지금쯤 너는 뭘 하고 있을까. 혹여, 다른 사람이라도 만나는 걸까. 겨우 오던 잠도 모두 달아나 버려 상체를 일으켜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차가운 금속이 금세 손 온도를 앗아간다. 네가 없는 방안은 온통 차가운 것투성이야. 내 유일한 따듯한 것이었던 네가 없어지고 나서 나는 4월이 다 되어가는 데도 여전히 추워. 액정에 빛나는 수많은 이름 속에서 네 이름 세 글자를 찾는다. 찾지 않아도 이미 달달 외우고 있는 번호였지만 네 이름을 읽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걸, 너는 알까, 익숙하게 번호를 찾아 네게 전화를 걸어본다. 차가운 휴대폰의 냉기 때문인지, 아니면 네가 전화를 받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인지 손끝이 더 차갑게 시려온다.
“자?”
수신음이 끊기고도 길게 이어지는 침묵에 불안한 마음을 숨기지도 못하고 먼저 말을 걸어버린다. 무덤덤하게 들리는 목소리가 다 들켰을 지도 모르지만 너는 분명 대답해주겠지. 너는 그런 사람이니까.
“..아니”
예상대로 얼마 못가 나오는 묵직한 목소리에 조금은 안심하고 만다. 또다시 이어지는 침묵, 전에는 이 침묵까지 사랑스러웠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았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침 삼키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의 조용함에 숨이 막힌다. 왜 다시 네게 전화를 걸었을까. 네가 그리워서인지. 아니면 외로워서인지. 잘 모르겠어. 그저. 네 목소리가 듣고 싶었어, 낮고 다정한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들으면 잠이 잘 올 것 같아
“술 마셨어?”
“응”
어떻게 말해. 그냥. 네 목소리가 그리웠다고. 너와 헤어지고 나서 자존심밖에 남지 않은 나는 그런 말을 뱉을 수 없어 그저 입술을 달착인다. 나조차도 모르는 내 마음을 네가 알아주길 바라면서 마시지도 않은 술을 마셨다고 거짓말 하며 네가 먼저 나를 찾아주길 기다린다. 너도 이런 느닷없는 내 전화가 싫지는 않은 걸 알고 있어.
“집이야?”
“...응”
와줘 택연아. 냉기밖에 남지 않은 내 곁으로 와서 나를 안아줘, 다정하게 내 손을 잡아줘, 너무 추워.
“....금방 갈게”
영원같은 침묵이 끊기고 네 목소리가 들린다. 너라면 20분 안이면 도착하겠지. 너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해. 네가 좋아하는 와인 한 잔과 샤워.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찬 물을 몸에 끼얹는다. 조금이나마 몸에 돌았던 온기는 순식간에 식어버리고 이가 부딪힐 만큼의 냉기가 덮친다. 차가운 물이 머리카락 끝을 타고 콧등에 떨어진다. 괜찮아. 지금은 추워도 괜찮아 분명 네가 와서 나를 따듯하게 데워 줄테니까. 지금은 조금 추운 편이 좋아. 네가 날 걱정할 테니까. 젖은 머리를 쓸어넘기며 의자에 앉아 와인 한 모금을 목에 넘긴다. 이제 기껏해서 5분 남았으려나. 다 마신 잔은 테이블에 내려놓기 무섭게 벌컥 문이 열린다. 우리집 비밀번호, 여전히 잊지 않았네.
“...김민준.”
“....응..”
“...”
택연이는 내 이름을 불러놓고 아무 말 없이 잔에 따른 술을 한번에 넘긴다. 뛰어왔는지 굵은 땀방울이 송글송글하게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눈빛은 진하고 어쩌면 조금은 화가 난 것 같았다.
“...김민준”
여전히 다른 말은 없이 이름만 부르는 택연이는 이를 앙문 채 내 이름만 연달아 불렀다. 겨우 와인 한잔으로 술에 취할 사람이 아닌데 무언가 이상한 낌새에 일어나 얼굴을 살핀다
“옥택...”
어느새 허리에 감긴 팔이 훅하고 거리를 좁힌다. 숨결이 닿을 만큼의 거리. 뜨거운 시선과 차가운 시선이 얽힌다. 화난걸까 화가 났다면 뭐 때문에? 화날만한 짓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눈썹이 움찔 거리고 시선은 따듯하다 못해 뜨겁다. 아 드디어 생각났다. 하고 싶은 얼굴, 화가 나거나, 지겨워진게 아니다. 옥택연은 지금 그저 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던 참에 타이밍 좋게 내가 전화 한거고. 헤어진지 몇 달이나 지났는데 변한 건 하나도 없네. 미련해빠진 나와, 욕망에 충실한 너. 어쩌면 우린 그래서 사랑했는지도 몰라.
“몸이 왜 이렇게 차가워”
네가 걱정해줄까봐. 일부러 냉수 마찰을 했다는 이야기는 비밀로 남기기로 했다. 눈치도 없고 성격도 급한 네게 여우같은 짓은 통하지 않는 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네게 그런 티를 낼 필요도 없고, 우리는 헤어졌으니까.
대답 대신 입을 맞추는 걸로 대신한다. 다른 데에서는 안 해도 될 말을 골라하는 주제에 헤어지고 나서는 먼저 하자는 말 하나 하지 않는다. 떠날 마음도 없으면서. 내가 전화하면 어디든 삼십분 이내로 달려오는 주제에. 쓸모없는 도덕심에 불과하다. 착해빠진 너는 절대 내 전화를 거부 하지 못해. 그걸 너는 알고 있을까. 추워서 그런건지 아님 정말 네가 그리워서인지. 나조차 모르는 마음을 네가 알 리가 없으니까. 안심하고 입을 맞춘다. 따듯한 숨결과 차가운 숨이 섞이며 부드럽게 혀를 감싸 온다. 허리를 감은 팔에는 어느새 힘이 잔뜩 들어가 으스러뜨릴 만큼 강하게 안아온다. 차가운 침대. 나 혼자 있을 때는 시릴 만큼 차가운 자리였는데, 아님. 너와 있을 때 이 자리가 가장 뜨거웠던 자리라서 춥게 느껴지는 걸까. 어느새 서로 눈을 감고 강하게 입술을 빨아 낸다. 내일 죽을 것처럼, 당장 몸을 섞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들처럼. 느릿한 걸음거리가 답답했는지 택연이는 나를 들어 침대에 앉혔다. 금방이라도 나를 죽일 듯한 성난 눈빛은 어느새 순해져 잘 길들여진 강아지처럼 눈을 깜박였다. 내가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다는걸 눈치 챈걸까. 등에 닿은 벽은 차갑다. 방금까지 안겨 있던 네 품이 지나치게 뜨거운 탓이다. 너는 땀에 젖은 셔츠를 바닥에 던져버린다. 보기 좋게 그을린 피부와 잘빠진 몸은 여전했다. 팔을 뻗으면 자신의 목에 감고 내 바지를 벗겨내는 게 익숙해 괜히 이 당연한 움직임이 가능하기가지 우리는 얼마나 몸을 섞었을까. 네 몸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아직도 나 일까. 다리를 벌리고 허벅지에 닿는 네 손길이 데일만큼 뜨겁다.
“하아.. 택연아.”
조금 급한 손길에 허리를 빼다 억센 손에 잡혀 끄트머리로 끌려나가고. 고통의 비명소리는 다시 입술에 막히고 만다. 속옷가지 벗겨낸 택연이는 긴장된 구멍 사이로 억지로 손가락을 욱여넣는다.
“아파. 아파..!”
괴롭게 들어온 손가락에 허리를 틀어 벗어나자 힘으로 내 손을 묶어 누른다. 팔 하나 조차 움직 일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 오기 전에도 술을 마셨는지 입안에는 와인이 아닌 짙은 알코올 향이 감돈다. 다시 손가락이 몸을 파고 들고 여린 점막을 사정없이 헤집었다. 마치 찢어발기겠다는 듯, 손톱을 세워 내벽을 긁어내고 풀리지 않은 곳 까지 파고들어 움켜쥔다. 할 수 있는 일은 비명 뿐, 목이 쉬도록 너의 이름을 부른다.
“..아악..! 아파.. 제발...”
겨우 눈을 떠 본 택연이의 얼굴은 땀에 절어 있었다. 어쩌면, 할 수 있다면 남자 중에서도 드물게 힘이 강한 택연이의 힘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지만 단 한번 뿐이라면 이 손길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달싹이는 입술 사이로 다시금 입술이 맞물린다. 그 사이를 놓치지 않고 입술을 콱 깨문다.
“악!”
힘이 풀린 새를 노려 팔을 풀어내고 구석에 몸을 구겨 넣는다. 역시나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눈빛.
“택연아”
이렇게 하면 내가 연락을 안할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내가 자기한테 질려버려서 다시는 전화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건, 너와 내가 이어진 연약한 실 하나를 네가 억지로 끊어내려 하고 있다는 것.
벌겋게 손자국이 남은 손목을 한 번 눈에 담았다가 부드럽게 택연이의 목에 감는다.
“이번 뿐이야, 다시 연락하지 않을게.”
정말 이번 뿐이야, 그러니까 억지로 끊어내지 않아도 돼
조용히 속삭이는 말에 손길이 부드럽게 변한다. 알았을까.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마지막은 적어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줘. 네가 정말 사랑했던 내 마지막 부탁이야
날개뼈 부근부터 골반까지 여리게 쓰다듬던 손길이 다시 다리사이로 파고들어 구멍 주위를 어루만진다. 투박한 손끝이 안으로 침입하고 유리를 다루듯 조심스레 지분거리며 내벽을 풀어낸다.
“응...”
야릇한 소리와 함께 적당히 풀린 구멍에서 손가락이 빠져나간다. 굵은 눈썹을 까닥이며 내게 허락을 구하곤 그제야 제 앞도 풀어내 다리 사이에 단단히 자리를 잡는다. 넓은 어깨에 걸쳐진 내 다리가 처량하게 흔들린다.
“넣을게.”
이미 한계점에 다다른 듯 택연의 목소리는 평온하지 못한 채 달든 숨소리가 섞여 있다. 착하지.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이면 손가락과는 다른 압박감이 몸을 억누르며 안을 파고 든다.
“흐.응...”
더 이상 들어올 수 없다고 느낄 때까지 깊게 들어오며 몸을 달군다. 네가 오기전까지 추웠는데 지금은 뜨거울 만큼 열이 오른다. 이건 섹스의 탓일까. 아니면 네 탓일까. 머릿속에 희미하게 떠오른 의문은 쾌락에 먹혀버리고 그저 부연 시야속에 보이는 네 몸을 끌어안고 어깨에 달뜬 신음성을 뱉어낸다. 허전하다 싶을 만큼 빠져나갔다가 다시 퍽 하고 부딪히는 몸, 머리를 감싸 안은 손과는 다르게 아래는 무자비 하게 잡아먹힌다.
“읏. 흐... 택연아-”
한 톤 더 높게 올라가는 신음소리에 네 몸은 점점 더 빠르게 나를 파고 든다. 더 깊게 들어와 안쪽을 찌르고 내 몸의 한 곳도 빠지지 않고 네 손길이 스친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에 열은 점점 쌓여가고 목석같았던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네 움직임에 맞춰 몸을 들썩인다. 너를 놓치지 싫어 너를 따라 허리를 움직이며 어깨에 이를 세운다. 시야는 흐려지고 손 끝에 힘이 자꾸 풀려나간다. 영혼까지 네게 잡아먹히는 것 같이,
어느새 눈앞이 하얗게 변하고 이젠 네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도 보이지 않아, 자꾸만 불안해 손으로 네 등을 잡아도 땀으로 미끄러지고 귓가에는 네 숨소리와 피부와 피부가 맞닿는 거친 파열음 뿐, 너는 나를 품에서 떼어 놓고 허리를 양손으로 잡은 채 거칠게 안을 파헤친다. 제 정신을 유지할 여력도 없이 네 움직임에 흔들린다. 배속을 헤집는 네것과 데일것같은 공기, 그리고 뜨거운 너, 이 모든게 세상의 전부인 듯 베개 끝을 움켜쥐고 교성을 참아낸다.
“하아..응...”
“..안에 할게”
“..으.응....”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기억이 몽롱하다. 바다 속에 갇힌 것 마냥 네 목소리조차 먹먹하게 젖어 그저 네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는다. 아득해지는 정신과 뱃속으로 울컥하고 무언가가 차오른다.
“..사랑해...”
하면 안될 말을 한 것 같은 기분에 머리가 어지럽다. 방금 내가 무슨 말을 뱉었는지 조차 모를 만큼. 혀끝이 달다. 뜨거운 피부가 허리를 감싸며 하나의 틈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강하게 끌어안고 달디 단 혀를 탐한다. 아릿한 위스키의 향이 입안에 가득 차 점막을 쓸어내린다. 방금까지 하얗던 세상이 스위치를 내린 듯, 일순에 까맣게 녹아내린다.
*
“하아..”
협탁 위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며 머리를 움켜쥔다. 모든 고민의 원인 제공자는 세상모르게 잠에 빠져 뒤척임조차 없다.
헤어지자 말한 쪽이 누구더라.
몇 개월 전 민준이는 내게 이별을 고했다. 너무도 갑자기 찾아온 이별에 나는 민준이에게 준 마음을 돌려 받지도 못하고 그렇게 헤어졌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나는 민준이 집의 침대에서 일어났다.
반복일 뿐이었다. 술에 취해 잠이 오지 않을 때면 민준이는 내게 전화를 했다. 안받으면 되는거 아니냐고 하기에는 나는 여전히 민준이를 너무 사랑했다. 그게 문제였을 뿐, 어쩌면 그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내가 원해서 내가 전화를 받고 춥다는 말에 한달음에 달려가 마른 몸을 끌어안은 건 언제나 내 쪽이다. 세상 모르게 자고 있는 얼굴을 바라보다 금새 고개를 돌려버린다. 이렇게 외로워 할거면서 왜 헤어지자고 해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할까.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스러운 너를 조금은 탓하게 된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며 사랑한다고 말해주니까.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너도 나를 사랑했던 그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그렇게 말해주니까. 여전히 나는 끊을 수 없다. 너를 끊어내기에는 너를 너무 사랑했고 여전히 너는 추위를 잘 탔다. 춥다는 한 마디면 어디라도 달려가고 차가운 네 몸을 끌어안는 게 내 전부였다.
‘이번 뿐이야, 다시 연락하지 않을게’
이 말이 대체 몇 번 째 인지. 다시 새 담배를 입에 물고 연기를 뿜어낸다. 이렇게 흩어지는 마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네가 달콤하고 외로운 목소리로 말하는 ‘추워’를 나는 언제쯤에야 거부 할 수 있을까. 괴롭고 힘들고, 나를 다시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네가 뻗은 손을 나는 쳐 낼 수 없는 이유가. 여전히.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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