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배형주율] plz drag
[ plz drag ]
부제: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형배형주율
고난도 있고 사랑도 있는, 아주 평범한 러브스토리
어쩌면 그렇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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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주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물어뜯은 손 끝은 이미 너덜너덜하다.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건지 형주야, 형주야 내 아가. 부르면 달려와서 무슨 일 있냐고 묻는 네 모습이 아직 선명한데. 네가 쓰던 라이터는 그대로 남아있는데. 왜 너는 없냐 이 말이다. 네가 나를 스스로 떠날 리 없는데. 그럴 리가 없는데 왜 전화도 받지 않고 그래, 네가 생각하는 거 이상으로 나는 걱정이 많아서 하루 종일 네 생각만 난다 형주야. 그 개새끼가 억지로 너를 가둬 놓고 있는 거지? 그렇지 않으면 네가 이렇게 내 속을 썩일 리 없는데. 너는 언제나 내게 착하고 예쁜 짓만 했는데. 아이다. 네가 예쁜 짓을 하는 게 아니라 너는 언제나 예뻤고 나는 그런 너를 사랑했을 뿐이다. 형주야 어디있니. 밥은 잘 먹고 있는 건지 잠은 잘 자고 있는건지 너무 걱정된다. 다시 네게 전화를 건다. 이번에는 네가 받기를 혹시나 그 새끼가 너를 감시하고 있다면 그 새끼를 죽여 버리고 나오면 될텐데. 그 비실비실해보이는 검사놈 하나 네가 죽이지 못할 이유 없지 않나. 그 새끼는. 너와 나 사이를 방해하는 방해물일 뿐인데 형주야. 내가 예전에 니 보고 사람죽이는 일은 모두 내가 한다고 말한 적 있었나? 그래서 네가 그 새끼를 못 죽여버리는 거가? 그래, 그럴 수 있지. 형주 니는 내 말 하나는 잘 들었으니까. 내게만 착한 아이니까. 그렇지 이해 할 수 있다. 사실 니가 뭘 하든 내가 용서를 못하겠노, 니도 알다 싶이 나는 법 없이 사는 놈 아이가. 근데 내가 용납이 안되는 건 너를 눈 앞에서 다른 새끼가 채갔다는 거다. 그 검사 놈 곁에서 뭘 하고 있노.
한참을 또 생각에 빠져들다 보니 재떨이에는 꽁초가 가득하다. 시간은 이르지만 너를 보러가야겠다 형주야. 차에 시동을 걸고 네가 다니고 있는 학교로 달려간다. 너도 분명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 자식이 오기 전에 너를 데리러 가야 한다.
너의 시간표라면 이미 오래전에 외워두었다. 앞으로 한 시간 후면 네가 이 길로 나오겠지. 교문 앞에 서서 너를 기다린다. 시간이 너무 길다. 네가 없는 일초 일초가 내게는 천년처럼 지나간다. 형주야. 이번에는 너를 데리고 갈게. 너도 내 품에 있는 게 더 편하겠지 그렇지. 어느새 발 밑에 꽁초가 쌓여있다. 언제나 담배 좀 줄이라고 예쁜 잔소리를 하던 너였는데, 그때는 그게 귀찮았다. 지금에서야 네가 얼마나 나를 사랑했는지 알 수 있는데 형주야 내 사랑도 여전한데 사랑할 너만 없다. 너만 돌아와 준다면 완벽할 텐데. 그렇지? 저 멀리 익숙한 그림자가 보인다. 남들보다 한뼘은 큰 키, 너다 형주야. 방금 물었던 담배를 바닥에 짓이겨 버리고는 네 앞에 선다.
“형주야”
내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네 모습이 느리게 재생된다. 마치. 고장 난 필름영화처럼, 어쩌면 삐거덕거리는 소리도 나는 것 같다. 아가, 내 아가 형주야. 아니 이제 이름을 바꿔서 찬성이라고 하던가. 그런 이름 같은 건 어울리지 않는다. 네 이름은 앞으로도 형주 하나 뿐이다. 나와 같은 글자를 공유한 그 이름이 네 이름이다. 네 얼굴이 굳어간다. 아마 내가 너무 반가워서겠지. 이게 얼마만일까 이틀, 벌써 이틀이나 되었구나. 너 없이 이틀을 어찌 버텼는지 기억조차나지 않는다. 네가 없는 시간은 내게 없는 시간과 다를 바 없다. 형주야. 네가 있어야 세상이 움직인다. 네가 없는 시간동안 멈춰 있었는데 왜 너는 그토록 예뻐지기만 하니. 한걸음, 네게 다가간다. 몇 걸음 밖에 되지 않는 거리가 왜 멀게만 느껴지는지, 다시 한걸음 네게 다가간다. 그리고
너도 한걸음 뒤로 물러난다. 바람에 흔들리는 머리카락이 어느새 길었다. 살짝 눈을 덮는 길이가 참 예뻤다. 아니 형주야 언제나 너는 예쁘다. 한걸음 물러난 거리만큼 또 다가간다. 그리고 또 네가 물러난다.
한걸음 다가가면
또 한걸음 물러난다.
아무리 다가가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형주야. 이리와 한 마디면 어디에 있던 내 옆에 달라붙던 너는 이제 없는 걸까. 아니 너는 그대로다, 남의 말을 잘 듣는 그 성격 탓이겠지 서율이라고 했던가 그가 나와 말을 섞지 말라고 미리 일러둔 탓이겠지. 형주야, 그런 놈 말은 듣지 않아도 된다. 네가 착한 것은 알고 있지만 네가 말을 들어야 하는 상대는 나 하나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니
언제 연락을 한건지 묵직한 구두소리와 함께 얼굴도 보기 싫은 서율이라는 작자가 나타나 네 손을 잡는다. 동그란 손끝이 그 손으로 사라진다. 네 손을 잡을 수 있는 건 오직 나뿐이었는데. 형주야 놔, 놔 형주야. 한참은 작은 그는 네 앞을 막아서고 또랑또랑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너를 가졌다는 자만일까, 눈이 빛난다. 이런 사람의 눈을 나는 싫어한다. 아, 물론 형주 네 눈만 빼고 네 눈은 밤하늘의 있는 별처럼 그렇게 빛나 형주야. 마치 달이 환하게 뜬 밤을 한 조각 잘라다 네 눈에 넣은 모양으로 빛이 난다. 그런데 이 새끼는 달라 진흙 웅덩이에 비친 달......, 맞아, 딱 그렇다. 너라는 달을 내게서 뺏어간 진흙웅덩이, 그런 눈을 하고 있다. 훔쳐간 빛에는 한계가 있다는 걸 알아야지 이제는 내 하늘의 달을 돌려받아야 할 때 인 것 같아. 여전히 네 앞을 막고 있는데 여기서 죽여버리면 안되겠지?
“제가 찬성이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몇 번이고 말했을 텐데요”
“찬성이 따라다닌 적 없습니다”
그래, 나는 한번도 찬성이라는 사람을 따라다닌 적 없다. 그저 형주야 너의 발자국을 따라 걸었을 뿐이다.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말 장난할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나는 잡지도 못하는 그 손을 움켜잡고 그대로 사라진다. 내 시야에서 너는 자그마한 점이 되어 사라진다. 너를 데리고 사라진다. 감히 네게 뻗을 수도 없는 내 손은 허공에 뻗었다가 덧없이 떨어지고 만다. 손안에 잡히지 않는다. 네가 사라지는 긴 시간동안, 너는 한번도 돌아봐주지 않는다. 형주야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언제나 예쁜 너의 웃음은 나의 것이었는데. 모두, 저 새끼가 원인이다. 여전히 너도 나를 상하고 나도 너를 사랑하는데 그 완벽한 세계의 쥐새끼가 끼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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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새끼에게는 시궁창이 잘 어울린다. 마치 이 곳처럼, 습한 공기. 음산한 물소리, 그 사이로 들리는 시궁쥐의 숨소리.
“어울리네”
“...찬성이는 어디 있는 겁니까?”
“찬성이가 누군데”
“말장난 하는 사이 아닌 것 같다고 몇 번이고 말씀드렸는데요”
말 그대로다. 찬성이가 누구인지 나는 모른다. 알 필요도 없다. 쥐새끼가 지어준 이름 따위 외울 가치조차 없다. 묶여서 옴짝달싹 못하는 꼴이 재밌지만 역시 입까지 막아놨어야 했다. 저 새끼의 주특기가 가벼운 입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형주야”
“..형님”
잡고 있는 손이 작게 떨린다. 역시 너도 기쁜 거지? 너무 기뻐서 표정관리가 안되나 보다. 형주 너는 웃는 게 제일 예쁜데 긴장으로 굳어 있구나.
“형주야. 내가 말했지? 사람을 죽이는 건 내 몫이라고. 근데 이번 한번은 예외다. 총 쓰는 법 알제?”
하얗고 예쁜 손에 총을 들려준다. 익숙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하얀 손끝에 걸려 있는 검은 총이 꽤 예쁘구나. 이럴거면 진즉에 쥐어 줄 것을. 하지만 역시 네 손에 피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번이 마지막으로 네 몸에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으련다. 그렇게 너를 세워두고 네게서 떨어진다. 네 몸에서 멀어지는 게 달가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번만은 용서하마, 이번 일은 너 혼자 해결하면 좋겠다. 그렇지? 네게도 끔찍한 새끼잖아. 네게서 나를 떼어놓은 사람, 멀쩡히 잘 살고 있는 네게 아주 잠깐 뿐인 빛을 보여저서 더 큰 절망을 알게 해준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잖아. 뒷걸음을 치면 칠수록 네 뒷모습이 잘 보인다. 어쩌면 형주 너는 뒷모습도 예쁘니.
“찬성아. 침착해”
왜 자꾸 형주를 그런 이름으로 부르는지 역시 저 입을 막아놨어야 했다.
“...형...”
“그래 형주ㅇ..”
“율이형..”
언제 저 쥐새끼를 형이라고 부를 만큼 친해진 건지 조금 맘에 안 들지만 이제 곧 죽을 놈을 위한 마지막 배려라고 생각한다. 형주 너는 그토록 착한 아이니까.
“...미안해요.. 형..”
천천히 총을 든 손이 올라간다. 그래 그대로 그 새끼의 얼굴을 향해서 총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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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
파열음이 울리고 한 사람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진다. 깊고 깊은 피가 웅덩이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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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도 있고 사랑도 있는, 아주 평범한 러브스토리
어쩌면 그렇지 않은,
_fin¿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