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너찬] 나쁜 짓
누너쿤 [나쁜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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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기분 좋은 목소리, 단정한 옷차림 큰 키와 예쁜 얼굴, 그런 사람을 동경하는 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몰라, 18살의 준호는 수업시간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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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준호는 귀를 의심했다. 찬성은 자신의 뱃속 가득 찬 것에 허리를 가늘게 떨고 준호의 손에 깍지를 끼웠다. 아린아이 답지 않게 커다랗고 단단한 손이 좋았다. 가늘게 솟은 눈도 좋고 단단해 보이는 입매도, 불안한 주제에 믿음직한 표정을 짓는 것도 좋았다. 그저, 이 아이가 좋았다. 찬성은 몸을 그에게 기대고 한숨을 뱉었다. 솔직하게 말해 이 아이를 사랑했다. 이렇게 몸을 섞고 입을 맞추는 것 그 이상으로, 사랑한다 속삭이고 매일 아침 함께 눈을 뜨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찬성은 입을 맞춰오는 준호를 피하ㅣ 않고 받아들였다. 단 한순간의 쾌락이라면 얼마든지 이 아이에게 바칠 수 있다. 그저 찰나의 시간뿐이라면 이 아이와 함께 하고 싶다. 그렇지만 그게 아니라면? 찬성은 배 안 가득 차오르는 액체에 허리를 떨었다. 조금 준호의 몸짓이 거칠어 진 것 같다.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는데 달콤한 혀끝이 입을 막아버려 찬성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복잡한 생각은 잠시 잊고 그저 달콤함에 취하고 싶었다. 준호가 주는 달콤함은 초콜릿처럼 씁슬한 맛을 남기고 달콤하게 녹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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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엄청 차려 입으셨네요? 데이트 있어요?”
“아, 오늘 상견례가 있어서”
한순간 주위가 녹아들었다. 여느 때와 같은 교무실에서 준호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소리를 들어야했다.
“와 드디어?”
“하하, 집안에서 빨리 결혼하라고 해서요”
결혼과 찬성은 무척이나 어울리지 않는 울림이었다. 주변 모든 소리가 차단되고 흐릿한 시야 속에서 찬성만이 떠올랐다. 선생님이 결혼을?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선생님”
“이준호!”
훌쩍,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바로 코앞에 찬성이 있었다. 뒤에서 악을 쓰며 자신을 찾는 학생주임에 목소리도 당장 준호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결혼해요?”
이를 악 물고 찬성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예의상에 아니라는 말도 없이 고개를 끄덕인 찬성은 가까웠던 거리가 무색하게 멀어보였다. 너무 멀었다. 감히 손도 대지 못할 거리에 있는 것처럼,
“그럼 선생님은 수업이 있어서”
찬성은 준호를 지나쳐나갔다. 너무도 허무하게 처음부터 준호와는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는 듯
그 길로 준호는 교실로 돌아가지 않고 찬성의 집을 찾아갔다. 아무도 없는 집 앞에서 준호는 몇 시간이고 모를 시간동안 찬성을 기다렸다. 불이 켜져 있던 몇 집의 불이 꺼질 때쯤에야 찬성은 집에 도착했다.
“뭐야?”
“할 말 있어서 기다렸어요”
“나는 할 말 없어”
“왜 없어요?”
“너랑 말씨름할 시간 없어, 선생님 피곤해”
준호의 억센 손이 찬성의 팔뚝을 움켜쥐었다. 도망가지 말라는 무언의 행동이었다.
“왜 이래 준호야”
“내가 지금 눈깔 안 뒤집어지게 생겼어요? 선생님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한테 사랑한다고 했던 선생님이 선을 봤대, 결혼을 하겠대. 그런데 내가 지금 안 돌게 생겼냐고요”
찬성은 거칠게 준호의 손을 뿌리쳤다. 더 이상 듣기 싫었다. 찬성이 준호에게 원했던 것은 한 순간의 달콤함이지 이런 집착이 아니었다. 조금은 똑똑한 아이인 줄 알았는데 그저 똑같은 어린아이였다.
“거짓말이었어요?”
“거짓말 아니야”
현관에 들어서서 불을 켰다. 너무 익숙한 이 행동이 준호에게 있어 익숙하지 않았다. 우선 눈앞에 찬성이 너무 다른 사람같았다.
“그럼 왜 결혼해요? 사랑하지도 않잖아요. 사랑은 나랑 하고 있잖아요”
준호는 반쯤 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옷도 갈아입지 않고 침대에 앉은 찬성은 준호를 바라보며 피곤함을 느꼈다.
“어른은 사랑하지 않아도 결혼 할 수 있어”
“...어째서요? 선생님은 나 없어도 괜찮아요? 나 못 봐도 괜찮아요? 내가 아니어도 괜찮은 거예요?”
“준호야”
악을 쓰던 준호는 푹 하고 쓰러지며 찬성을 끌어안았다. 있는 힘껏 찬성을 안은 팔이 떨리고 있었다. 가지 말라달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잘못했어요. 제가 다 잘못했어요. 더 잘할게요. 하지 말라는 건 다 안할게요. 나 사랑하지 않아도 되요. 정말이에요. 내가 선생님 몫까지 사랑할게요. 아니 그 이상 더 사랑할게요. 나 버리지 말아주세요”
찬성의 귓가에 빠르게 속삭인 준호는 어느새 울고 있었다. 기껏 차려입은 정장의 한 쪽이 젖어 들어갈 때 까지, 찬성은 준호의 등을 쓰다듬었다. 준호를 사랑한다. 이런 어린아이 같은 면도, 귀엽다고 넘어갈 수 있을 만큼, 하지만 찬성은 딱 그만큼 준호를 사랑했다.
“제발 결혼하지 말아주세요..”
준호는 말끝을 흐렸다. 벽에다 대고 말하는 듯이 동의가 없는 것을 알고 있는 탓이었다.
“준호야 사랑해”
찬성은 품에서 준호를 떼어냈다. 그 몸짓과는 다르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면서
“...그치만 어른은 사랑 없어도 결혼 할 수 있어, 이득이 된다면 뭔들 못하겠어. 너도 나중에 되면 알게 돼”
사망선고처럼 찬성은 그렇게 말했다. 준호는 숨통이 막혔다. 마치 찬성이 자신의 목을 조르는 것 같이 턱 끝까지 차오른 압박에 차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랑은 너랑 하지만, 너에게 결혼을 하기에는 넌 너무 어려”
이만큼 잔인한 말이 어디 있을까. 탁하고 힘이 풀린 준호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찬성의 다리만 겨우 보이는 시야에 준호는 울음을 터트렸다.
“... 결혼한 사람 좋아하는 건 나쁜짓이죠?”
“보통은 그렇지”
“..내가 나쁜 짓하지 않게 해주세요. 선생님이잖아요”
선생님은 학생을 나쁜 일 하게 하면 안 되잖아요. 준호는 마지막으로 빌었다. 계속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사랑해주지 않아도 괜찮으니 제가 계속 당신을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준호는 그렇게 빌었다.
“미안해 준호야”
찬성의 부드러운 손이 준호의 머리카락을 스쳤다. 쓰다듬는 손길이 따스해서 오히려 더 눈물이 나왔다. 터질 것 같은 구역질에 준호는 뛰쳐나오듯 밖으로 나와 겨우 벽을 짚고 서서 연신 헛구역질을 하다 아무것도 게워내지 못했다. 슬프게도 준호는 계속 나쁜 짓을 할 것 같았다.
애석하게도 달이 참 예뻤다.